문경시(시장 신현국)는 지난 22일 옛길박물관 제17기 <박물관 대학> 3차시 「임하당 신후명, 평산신씨 집안이야기」편으로 강의는 박소희 연구위원(영남대 민족문화연구소)가 맡았다. 강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평산신씨 임하당(林下堂) 가문은 17세기 남‧서인 간의 정쟁이 극심했던 시기 남인으로 활약했던 임하당 신후명(申厚命)의 집안이다.
임하당 신후명 고문서는 간찰, 교지, 녹패, 호구단자, 분재, 유서(諭書), 교서(敎書), 유지(有旨), 해유문서(解由文書) 등 3책 201매 이며, 2010년 4월 5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22호로 지정되었다.
평산신씨 임하당 가문의 내력은 고려 통일의 주역 신숭겸을 시조로 하며 신개(申槩, 1374~1446)를 파조로 하는 평산신씨 문희공파(文僖公派)에 속한다.
신개의 9대손이 바로 신후명이다. 신개의 둘째 아들 신자승(申自繩, 1397~ ?)이 8대조로 신사임당의 증조부이기도 하다.
신자승은 태종의 외손녀이자 남휘의 딸인 의령남씨와 결혼하여 8남을 두었다. 여기서 둘째 아들 신숙정이 7대조이다.
신숙정(생몰 미상)은 1460년(세조 6) 문과에 급제하여, 신개부터 신자승, 신숙정까지 3대가 문과에 급제하며 가문의 위상을 높이고 있었다.
신숙정은 세 아들을 두었는데, 둘째 아들 신수의가 6대조이다.
신수의와 청주한씨 사이에는 2남이 있었는데, 장남 신응원이 5대조, 신응원의 아들 신극효(申克孝, 1538~1593)가 신후명의 고조부이다.
대대로 서울에 세거하던 이들 가문이 영남 지역과 접점을 형성한 시점이 바로 신극효부터이다.
고조부 신극효는 정원량(鄭元良)의 딸 동래정씨와 혼인하였는데, 당시 이 가문이 예천 용궁에 세거하고 있었다.
이후 신극효 아들, 신여길(申汝吉, 1562~? )은 한개수(韓介壽)의 딸 곡산한씨와 결혼하여 상철(尙哲) ‧ 상달(尙達)을 낳았다. 후에 아들 상철이 정묘호란의 공으로 원종공신에 추대됨으로서 좌승지에 추정되었다.
신후명의 조부 신상철(申尙哲, 1585~1632)의 자는 명숙(明叔), 호는 나은(懶隱)이다. 1609년(광해군 1) 진사시에 합격하고, 이후 광해조의 혼란한 세상에 과거 공부를 포기하였다.
그리고 대대로 서울에 세거하던 터전을 벗어나 1618년(광해군 10) 조령(鳥嶺)을 넘어 상주 영순리(永順里, 현 문경시 영순면)로 이거해왔다.
이후 신상철은 1623년(인조 1) 인조 즉위 후 성균관의 천거로 사포서별제(司圃署別提), 한성부참군(漢城府參軍), 광흥창주부(廣興倉主簿), 형조좌랑(刑曹佐郎) 등을 역임하였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으로 인조가 강화도에 피신했을 때 호조의 낭관으로 있으면서 나라의 재산을 조금도 잃어버리지 않고 잘 관리하여 후에 정사원종공신으로 좌승지에 추증되었다.
정묘호란 이후에도 전주판관, 병조정랑, 안동통판(安東通判) 등을 지냈다. 48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고 문경 오리동(梧里洞)에 안장하였다.
신후명의 부친 신형구(申衡耈, 1610~1683)는 자는 은옹(殷翁), 용양위부호군을 지냈다.
신후명은 조선 후기에, 병조좌랑, 형조참판, 충청감사 등을 역임한 문신으로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천휴(天休), 호는 임하당(林下堂). 신여길(申汝吉)의 증손으로, 조부는 호조정랑 신상철(申尙哲)이고, 아버지는 용양위부호군(龍驤衛副護軍) 신형구(申衡耉)이며, 어머니는 참의 성시헌(成時憲)의 딸이다.
1638년(인조 16)에 상주 영순리(지금의 문경시 영순면)에서 태어났으며, 1666년(현종 7) 문과 별시에 병과로 등과를 시작으로 64세 생을 마감하기까지 무려 90여회에 이르는 벼슬을 제수 받았다.
신후명은 1666년(현종 7)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듬해 승문원부정자로 처음 벼슬길에 올라 1676년(숙종 2)에는 병조좌랑이 되었다.
이듬해에 도당(都堂)이 선발하는 홍문록(弘文錄: 홍문관의 제학이나 교리를 선발하기 위한 제1차 인사기록)에 올랐으나, 대사간 이원정(李元禎)으로부터 유아(儒雅: 유교의 바른 도리)가 아니라는 탄핵을 받았다.
그 뒤 정언(正言)·지평(持平)·부수찬(副修撰)·장령(掌令)·사간·강춘도감사(江春道監司)·승지·형조참판을 거쳐 충청감사가 되었다.
충청감사 재직시에 친구의 사설 도판(屠販: 짐승을 잡아 파는 일)을 허락해주었다는 죄로 좌의정 윤지선(尹趾善)의 탄핵을 받았으나, 참판으로 접반사(接伴使)가 되기도 하였다.
1698년에 감사로 재직할 때 도내 산을 점유하여 묘막(墓幕: 산소 근처에 지은 작은 집)을 미리 설치하였다는 이유로 민진원(閔鎭遠)의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다.
그러나 곧 동지의금부사에 복직되어 이성휘(李聖輝)·송성(宋晟) 등의 옥사(獄事)를 극론하는 소를 올렸다. 특히 고을 수령이나 관찰사로 재직시에는 늘 청렴결백의 소신을 가지고 벼슬 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1700년에 당상(堂上)으로서 죄인 김인지(金麟至)를 변호하다가 정언 윤헌주(尹憲柱)의 탄핵에 의하여 파직되었다.
임하당과 관련된 이 고문서 가운데 특히 경기방어사, 평안도병마절도사, 나주목사, 충청도관찰사 등을 역임할 때 왕이 내린 교서, 유서를 비롯하여 간찰, 호구단자, 분재기, 그리고 평안도병마절도사 재직시 썼던 일기 등은 사료적 가치면에서 매우 뛰어난 자료라 하겠다.
또한 평산신씨 문경 입향 및 그 후손과 관련된 고문서가 잘 보존되어 있어 향후 문경의 사회상을 복원하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비록 역사상 큰 사건과 관련되어 두각을 나타내진 않았지만 현재 남아 있는 교지와 간찰, 문집을 통해 볼 때 당시의 생활상과 벼슬 관련 내용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이어지는 4차시(8월 29일) 강의는 「옥소 선생의 여행 발자취를 담은 ‘옥소고’」이다. 강사는 최호석 국립부경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이다.
기타 상세한 사항은 문경시 문경새재관리사무소 옛길박물관(경북 문경시 문경읍 새재로944) ☏054)550-8366으로 문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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